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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오늘의 인물

[오늘의 인물] ep.6 조선의 발명가 장영실

by EHAGuide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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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의 인물 6번째 주제로
'조선의 발명가 장영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생애

장영실 영전-출처. 제작작가 지산 박영길 화백

'장영실'은 '조선시대의 최고의 발명가'입니다.
장영실의 태어난 연도와 죽은 연도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장영실은 본관은 아산현(현 충남 아산)이지만 태어난 곳은 동래현(현 부산광역시)이고 관노의 자식입니다.
장영실은 동래현에서 관노로 일을 했습니다.

- 가족 관계
장영실은 특이한 가족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영실의 아버지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중국의 소주나 항주 출신의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망명한 기술자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관노이지만 처음부터 관노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만 여말선초의 정치적 혼란에 휩쓸려 몰락한 명문가 출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삶
장영실의 첫 등장은 수차(물펌프)를 만들어서 동래현은 가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 등장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당시 왕인 태종의 귀에 들어가서 실력을 인정을 받고 왕실의 보호 아래서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장영실은 중국 유학으로 기술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종은 농업의 생산력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생산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천문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장영실을 활용해서 천무도구를 만들게 했습니다.
장영실은 세종의 총애를 받아서 노비 출신이지만 종 3품인 '대호군'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후에 장영실은 여러가지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442년(세종 24년)에 장영실의 감독아래 만들어진 왕의 가마가 파손 되면서 불경죄로 곤장 80대에 파면으로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파면 이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직업

장영실의 '조선의 과학자', '조선 최고의 기술가', '세종의 파트너'인 '발명가'입니다.

● 업적

장영실은 발명가로 많은 과학 기구들을 발명을 했습니다.

간의-출처. 두산백과
'간의'는 '천체의 운행과 현상을 관측하는 기구'입니다.

앙부일구-출처. 천문학백과
'앙부일구'로 '해시계'입니다.

자격루-출처. 두산백과
'자격루'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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